로마는 기원전 8세기경부터 기원전 753년에 걸쳐 티베리스강변에 팔라티노 언덕을 중심으로 도시국가를 건국하였다. 건국 후 에트루리아에 지배받았으나 기원전 753년에 독립하였고 다시 인접 국가들을 제압하여 기원전 3세기에는 이탈리아반도 전역을 지배하고 2세기에는 지중해 전역에까지 확대하였다.
따라서 로마의 미술은 북방 에트루리아와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들의 영향을 받아 발전하였는데, 에트루리아의 현실적인 요소를 이어받으면서 그리스의 양식도 모방하였다. 에트루리아의 영향에서 출발한 이후 그리스의 영향은 그레코로만 시대를 가져오게 했다.
기원전 2세기 후반 그리스를 정복하고 많은 그리스의 조각들을 들여왔는데, 이때 그리스의 많은 예술가들이 로마로 들어와 그리스 명작들을 재현하였다. 그러면서 로마인의 취미나 헬레니즘 시대의 자연주의적 경향으로 변경되어 갔다. 이는 회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는데, 폼페이의 벽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로마의 미술은 그리스의 헬레니즘 시대의 정신과 에트루리아적 정신, 이 두개의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발전한 것으로 사실성의 규모의 크기, 주제의 다양성 등이 그 특징이다.
건축
앞서 말했든 로마의 미술은 그리스와 에트루리아의 영향을 받았는데 건축에서도 가감 없이 엿볼 수 있다. 그리스 건축의 특징인 기둥과 들보, 에트루리아의 특징인 아치형을 함께 사용함으로써 두 특징을 조화롭게 묘사하였다.
로마의 건축이라고 하면 단연 콜로세움을 빼놓을 수 없는데, 가장 대표적인 콜로세움은 로마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가 기원 72년에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 티투스제가 기원전 80년에 완성한 타원형의 대투기장이다. 외관상의 미를 중요시 여긴 그리스의 건축과 차별화되는 점은, 로마의 건축은 내부 공간의 충실함과 실용성을 중시하였다는 점이다. 내부 공간의 넓이를 위해 아치형의 형태를 추구하였고 내부의 거주성을 높이려 하였다. 기둥을 중시한 그리스와는 다르게 기둥을 줄이고 벽돌로서 벽면 자체에 상부의 중력을 균등하게 분배했다.
조각
조각은 그리스 미술에서 출발하여 로마인의 정서인 현실성을 녹여내어 로마 조각만의 독자적인 양식을 발전시켰다. 로마인이 이탈리아를 정복하고 세계 전역에까지 그 영향력을 미친 기원전 1세기에는 그리스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여서 그레코로만 시대를 만들었다. 기원전 2세기 후반에는 대부분의 그리스 조각들이 로마로 운반되었고, 그리스의 예술가를 들여와 그리스의 명작들을 재현시켰다. 로마 초기의 조각으로 알려진 [로마의 웅변가]는 아테네에서 로마로 불러들여진 클레오메네스가 만든 작품이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카라칼라 황제 등 황제의 초상에서는 거친 면모와 잔인한 성격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평화주의자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의 조각은 헬레니즘의 미술에 대한 반성으로 단정하고 고전적인 양식으로 복귀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로마는 개인의 명예나 공을 중요시하여 기념문이나 탑을 세워 그것을 부조로 꾸몄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기념문과 트라야누스 기념탑이 대표적이다.
회화
회화는 헬레니즘 문화를 수용하면서 시작되었는데 마찬가지로 그리스에서 건너온 많은 예술가들이 로마인의 저택을 구미면서 화풍 또한 헬레니즘 시대의 정신을 반영하고 , 사실적인 기법으로 감각적이고 신비한 주제를 그려내었다.
알렉산드로스 시대의 화가인 필록세노스의 [잇소스의 전쟁]을 모자이크한 작품은 고정 말기 양식의 아주 중요한 작품이다. 프레스코의 [디오니소스의 밀의]나 [텔레포스의 유아]는 헬레니즘과 이탈리아의 양식이 가미된 새로운 형태였다.
그리스의 양식을 인간 중심적인 데에 반해 풍경화나 정물화처럼 자연이나 사물을 주제로 한 회화도 이 시기에 나타났다.
공예
공예도 헬레니즘 시대의 양식을 계승하였는데, 초기에는 거의 모방하였지만 이후에는 로마인들만의 새로운 양식을 발전시켜갔다. 그중 단연 큰 변화는 도자기였다. 로마 시대에는 도자기의 예술적인 면모가 다소 부족한 편이었는데 상류층들이 유리나 은그릇을 주로 사용하여 자연스럽게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사그라들었기 때문이다.
로마의 도자기로 유명한 것은 기원후 2~3세기에 제작된 알레츠오 도자기였다. 도자기에 비해 유리그릇은 고도의 기술을 선보였는데 혤레니즘 시대에 발명된 유리를 불어서 제작하는 기법을 계승하여 잔은 잔이나 병형 등 각종 용기로 선보였다. 금공예품으로는 일군의 은그릇, 청동기를 예로 들 수가 있다. 청동 제품은 그 재료가 많고 제조가 비교적 용이한 편이라 일용품으로 다양하게 제작되었다. 실용적인 용도뿐 아니라 장식품으로도 제작되었고 로마인의 실용적인 양식 외에도 호사와 화려한 것을 즐기는 면모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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