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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서양미술사

[20세기 미술] 마티스와 피카소

by 그림 그리는 리리 2023. 9. 21.

앙리 마티스_ 붉은 방

앙리 마티스

앙리 마티스는 20세기 야수파의 프랑스 화가이다.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가장 유명한 화가로 꼽히는데, 22세 때 파리로 나가 그림 공부를 하고 1893년 파리 국립 미술 학교에서 귀스타브 모로를 스승으로 만났다. 1904년 무렵에 전부터 친분이 있는 피카소, 드랭, 블라맹크 등과 함께 20세기 회화의 제일보로 불리는 야수파 운동에 참가하여, 그 중심 인물로서 활약하다가 1954년 11월 3일에 8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제 1차 세계 대전 후에는 니스에 머물렀고, 모로코, 타히티 섬을 여행하였다. 그 곳에서 재혼을 하여 약 7년정도를 거주하였다. 말년에는 그림체가 더욱 단순화되었으며, 밝고 순수한 빛의 광휘와 청순 명쾌한 선에 의하여 훌륭하게 구성된 평면적인 화면은 '세기의 경이'라고 까지 평가 되었다. 2ㅔ2차 세계 대전 후에 시작하면서 1951년에 완성한 반 예배당의 장식은 세계 화단의 새로운 기념물이었다. 

그는 조각, 동판화에서도 뛰어났고, 직물의 디자인, 삽화 등 새로운 분야도 만들었다. 그리고 대표작으로 [춤], [젊원] 등이 있다. 피카소 또한 마티스의 색채 감각을 인정할 정도로 뛰어나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었다. 

 

인상파 연구

1892년에는 양친을 설득하여 다시 파리에 나와 아카데미 줄리앙의 부그로의 문하생이 되었다가 미술학교의 모로에게 배웠다. 동문인 마르케와 루오와의 교우는 이 때 시작되었는데, 루브르에서 고인을 배웠고 인상파, 신인상파를 한 발씩 연구해 나갔다. 화상볼라르의 점포에서 데생을 구입하였고, 인상파의 유산을 계승하여 우키요에에 열중한 것도 초기 마티스에 있어서는 필요한 영양이 되었다. 

 

포비즘

1896~1897년경부터는 원색의 대비에 의한 선명한 색채를 시도하였고, 앙데팡당 미술전의 출품을 통하여 젊은 드랭과 블라맹크와 깊이 사귀게 되어 색채는 더욱 선명해졌다. 이렇게 젊은 화가들의 선두에서 포비즘을 주도하였다.

포비즘의 운동은 무엇보다 먼저 표현수단의 순수함을 재발견하는 용기를 고취하고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그가 회화에서 구한 또 하나는 표현이었다. 얼굴을 찡그린다든지 하는 격정이 아닌, 주제적으로 화면에 만들어 내는 색과 모양의 배합을 의미하는 것이며, 긴밀한 질서를 가리키는 것이다. 

1908년 이후 그는 이러한 질서 있는 조형을 탐구하였는데, 예를 들면 실내화와 정물화에는 인물이 그려져 있으며, 의장, 장신구, 가구, 꽃병, 융단 등이 묘사되어 있어 인물이 의장보다 중요하다든가 융단의 색채가 다른 형태보다 뛰어나다든가 하는 관점은 성립되지 않는다. 다양하면서도 단순한 것, 질서와 조화의 창조가 그의 과제였다. 

그는 동비중, 순일, 절도를 표현의 3원칙이라 말했는데 마티스의 이러한 질서에 대한 감각은 자연법칙을 최상으로 하는 리얼리즘의 입장에서 보면 길에서 벗어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본질적으로는 형식감정을 존중하는 라틴적인 조형의 전통을 계승한다. 

 

 

 

파블로 피카소_우는 여인

파블로 피카소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는 스페인 말라가에서 출생하였고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활동을 한 20세기 대표적 큐비즘 작가이다. 대표작으로는 [아비뇽의 처녀들], [게르니카] 등이 있다. 

피카소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했다. 그의 작품 수를 전부 합치면 3만여 개가 된다. 피카소 작품의 개수와 다양성 때문에 많은 예술사가들이 그의 작품들을 시기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각 시기의 명칭을 정하고 시기를 몇개로 나눌 것인가를 놓고 계속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1904년 피카소는 이른바 '장밋빛 시대'를 맞는다. 이 시기의 작품들 역시 피카소가 파리에 머물 때 그려진 것이지만, 오늘날에는 초기 작품들과는 달리 스페인 화풍이 아닌 프랑스 화풍에 가까운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2년의 기간동안 피카소는 전과는 달리 붉은 색과 분홍 색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변화는 그림들의 주제로 삼았던 페르낭드 올리비에와의 로맨스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피카소는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였지만, 프랑스 정부에서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 프랑스 시민권을 기키지는 못했다. 피카소는 공산당인 사회주의자였으며, 한국 전쟁에서 벌어진 미국의 잔학행위를 발표하였고, 유엔과 미국의 한국전쟁의 개입을 반대하였다. 1973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미술 활동을 통하여 사회적 문제를 알렸으며, 대표적으로는 스페인 내전에서 게르니카 민간인들이 나치 독인 공군의 폭력으로 학살당한 게르니카 학살사건을 고발한 [게르니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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